174월/25

시행착오

우리는 아이를 사랑하기에 할 수 있으면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안내하고 싶어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아이가 겪어야 할 어려움을 모두 차단하거나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어떤 상황과 맞서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법이 그러합니다.

…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도 그와 같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작은아들이 자기 몫의 유산을 가지고 먼 길을 떠날 때 아들이 어떻게 될지 아버지가 몰랐을까요? 물론 아들을 깊이 신뢰했기에 그런 결정을 받아들였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적으로 잘 압니다. 자기가 피와 땀을 흘려 이룬 재산이 아니라 거저 주어진 재산은 당사자를 망가뜨리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럼에도 비유 속의 아버지는 아들이 떠나는 것을 허용합니다.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떠나 보지 않은 자는 끝없이 떠남에 대한 욕구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욕구가 해소되지 않을 때 사람은 투덜거리게 마련입니다. 비유 속 큰 아들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작은아들은 인생의 바닥까지 가 보았기 때문에 아버지 집을 떠올리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끔 우리를 방치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 시간은 쓰리지만 우리를 성숙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시간일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복을 주실 때도 완제품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주실 때가 많습니다.

김기석, “고백의 언어들” pp.240-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