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신학’이라는 표어를 가장 적절하고 올바르게 이용하는 방식은 이 표어를 바탕으로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식을 새롭게 이해하려 분투하는 것이다. 모든 서방 신학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감추어진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단서로 여겼다. 그러나 루터는 저 사건들이 단서가 아니라 우리 가운데,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오신 사건 그 자체라고 말한다. 모든 정통신학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실 때조차 여전히 감추어진 면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루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계시가 오히려 하나님을 감춘다고 말한다. 뒤집어 말하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감추어진 모습이야말로 하나님의 계시 그 자체다. 정통 그리스도교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존재의 거리가 너무 멀어 그분이 감추어져 있다고, 그래서 우리는 그 너머를 기웃거려야 한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루터는 우리가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아득한 거리 때문이 아니라고,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 눈앞, 너무도 가까운 자리에 자신을 드러내며 다가오시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젠슨, “종교개혁의 표어들_올바른 사용과 오용에 관하여”, pp. 69-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