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렘 20:7
부르심은 우리 마음의 소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부르심은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에게 주님이 원하시는 때에, 낯설고 어색하며 전혀 예기치 못한 주님의 말씀으로 강력하게 임하여 꼼짝없이 사로잡아 주님을 섬기게 합니다. 그 누구도 주님의 부르심을 거역할 수 없으며, 오직 주님이 주시는 말씀이 있을 뿐입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 1:5).
이렇게 말씀하시는 순간, 우리는 낯설고 멀기만 했던 미지의 강력한 말씀이 갑자기 너무나도 친숙하고 가까운 말씀 자신의 피조물을 애타게 찾는 설득력 있고 매혹적인 주님의 사랑 어린 말씀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은 제 인생에 간섭하셨습니다. 당신은 제가 가는 길에 갑자기 나타나셨고, 저를 매혹시켜 당신께 제 마음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또한 당신의 동경과 영원한 사랑에 대해, 그리고 당신의 신실하심과 강한 권능에 대해 들려주셨습니다. 능력이 필요할 때 힘이 되어 주셨고, 의지할 곳이 필요할 때 피난처가 되어 주셨으며, 용서를 구할 때 저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당신은 저를 설득하셨고, 저는 당신의 설득에 넘어갔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이토록 아픈 줄 알았겠습니까? 당신의 은혜가 이토록 혹독한 줄 알았겠습니까? 당신은 저를 성공이나 실패 따위와는 무관하게 당신에게 단단히 붙들어 매셨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에 끊임없이 내재하는 번민입니다.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을 떠날 수 없으며,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를 떠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지속적인 임재는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더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때, 하나 임재와 신실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위로를 받고 도움을 얻게 됩니다. 그때가 바로 하나님을 강력한 주인으로 모신 사람이, 하나님 앞에 무너져 절망하는 성도가 비로소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은 많은 두려움과 절망, 환난이 따르는 삶을 의미합니다.
사로잡힌 자는 우아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슬에 매여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 세상과 사람들 앞에 승리자로 등장하시는 분을 영화롭게 합니다. 우리가 매여 있는 사슬과 낡고 해어진 옷, 우리 몸에 남은 상처 자국들은 진리와 사랑이신 은혜의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찬송입니다. 진리와 의의 개선 행렬, 하나님과 복음의 개선 행렬이 이 세상을 가로지르며 전진할 때, 우리는 매인 자요 갇힌 자로서 개선 행진하는 마차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 우리를항상 새롭게 권유하시고 우리에게 강해지셔서,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주님만 믿으며 주님의 승리를 바라보게 하소서.”
출처: “디트리히트 본회퍼 40일 묵상” pp 3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