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평강”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바울이 이야기하는 건 두 가지다. 우선, 내면의 고요와 균형이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2) 처지가 이러하든 저러하든, 자신은 한결같다는 고백이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평온함인지 알겠는가? 바울의 형편에 비추어 생각해 보라. 누구나 내면의 평안을 원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에 맞서서 평온한 마음을 얻으려 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껏해야 쉴 새 없이 날아오는 청구서, 일터에서 벌어지는 경쟁, 못살게 구는 상사, 중요한 데이트가 있거나 또는 전혀 없는 정도가 아닌가? 하지만 바울은 고문과 죽음을 마주하고 있었다. 편지를 쓰고 있는 순간에도 감옥에 갇힌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말한다. “나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비결을 배웠다.”
그의 고백을 면밀히 살펴보라. “내가 본래 좀 터프한 사나이라 고문과 죽음에도 미소를 지을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건 태생적으로 강철 같은 기질을 가진 덕에 누리는 평강이다. 일종의 달란트인 셈인데, 재능은 가지고 태어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사도는 “비결을 배웠노라”라고 말한다.
가지고 태어난 재주가 아니라는 뜻이다. 바울이 말하는 특별한 부류의 내적 평안은 그만이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태생적이지 않다. 사도는 “그런 비결을 배운 덕에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을 지킬 수 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팀켈러, 고통에 답하다. pp.469-4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