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실패를 여러 번이나 경험했던 톨스토이는 한 회의적인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당신은 설교는 아주 잘하지만 과연 설교한 대로 행하고 있소?’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질문이고, 실제로 내가 늘 받는 질문이다. 그리고 대개 사람들은 내 입을 다물게 만들 수 있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이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나는 내가 설교하는 것이 아니고, 설교하고 싶어도 설교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 다만 내 행동을 통해서 설교할 수는 있고, 내 행동은 혐오스럽다. 나는 악하고 혐오스럽다. 그것들을 실천하지 못해서 경멸을 받을 만하다. 내가 (기독교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못한 것은 그러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럴 능력이 없어서다. 나를 에워싼 시험의 그물망을 벗어날 방법을 가르쳐 달라. 내가 따르는 길, 또 누구든 묻는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길이 아니라 ‘나’를 공격하라.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고 술에 취해 그 길로 가고 있다면 내가 비틀거리며 걷는다고 해서 그 길이 조금이라도 덜 옳은 길이 되는 것인가? 이 길이 옳은 길이 아니라면 내게 다른 길을 보여달라”
결국, 가장 큰 스캔들은 부활이 아닐지도 모른다. 진정한 스캔들은 하나님의 가족 안에 막달아 마리아 같은 귀신 들렸던 여인들, 베드로와 같은 비겁한 배신자들, 러시아 소설가처럼 예수님의 길을 “술에 취해” 걷는 이들을 위한 자리가 있다는 사실이지 않을까? 기독교의 진정한 스캔들은 크리스천들 자체이지 않을까?
스캇솔즈, “세상이 기다리는 기독교” pp.180-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