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친구나 가족들 앞에서 심판이라는 주제를 꺼내기 어려워하는 것일까? 왜 평생 예수님을 믿은 신자들이 지옥에 관한 설교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심판을 믿지 않기 때문일까? 비신자들이 믿는 사람들에게 약속된 안전하고 기쁜 곳에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나친 배려심 때문일까? 그러니까 불편한 주제를 꺼내서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기 싫어서일까?
만약 환자의 상태가 심각할수록 좋은 의사는 공격적인 치료법을 단행한다. 중독이 심할수록 가족들은 더 무시무시한 말로 경각심을 일으킨다. 아이가 독약을 마시려고 하면 사랑 많은 부모는 더욱 절박하게 소리를 지른다. “멈춰” 친구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 있을수록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크리스천이라면 영원한 현실에 관해서 더 직접적으로 알려 주어야 한다.
<디 애틀랜틱>에 인용된 마술사이자 코미디언인 무신론자 펜 질렛의 다음 발췌문은 많은 것을 말해 준다.
나는 개정한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다. 아니, 개종 자체를 존중하지 않는다. 천국과 지옥이 있고 사람들이 지옥에 가거나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믿으면서 겨우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면 …. 영생이 가능하다고 믿으면서 말해 주지 않는 것이 상대방을 얼마나 미워하는 것인가
예수님을 따르면,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천국은 실재한다. 그리고 그 반대인 지옥도 실재한다. 부담스러운 소식은, 사랑의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이 진리를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심판에 관해서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물론 기분 나쁘게 말하지 말고, 우정과 겸손, 배려, 사랑 안에서, 그리고 필요하다면 눈물을 흘리며 말해야 한다. 좋은 소식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무서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스캇 솔즈, “선에 갇힌 인간 선 밖의 예수” pp.204-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