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주는 깊은 겸손, 큰 기쁨으로

 

관계가 깨진 경우 언제나 당신 쪽에서 관계 회복을 주도해야 한다. 마태복음 5장은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 가서”라고 말하는 반면, 마태복음 18장은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라고 말한다. 문제의 발단이 어느 쪽에 있든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어떻게 소원해졌든 그리스도인은 화해하는 과정을 시작할 책임이 있다. “그 사람이 먼저 시작했으니 그쪽에서 나를 찾아와야지”라고 말한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도 속으로 당신에 대해 똑같이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가해자의 잘못이 성폭행처럼 흉악하고 일방적일 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범죄가 아닌 관계가 깨진 경우라면 대개는 양측 모두 자백하고 용서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관계가 망가진 책임이 전적으로 한쪽에만 있는 경우는 드물다. 거의 언제나 화해는 양쪽 다 회개하고 용서할 때 가장 잘 이루어진다. 양쪽 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한쪽의 잘못이 훨씬 클 수도 있지만, 그래도 상대가 작은 잘못이라도 기꺼이 자백하면 가해자도 ‘실토하기가’ 훨씬 쉬워질 수 있다.

복음만이 당신을 준비시켜 기독교적 화해 모델의 양쪽 역할을 다 수행하게 해 준다. 복음 덕분에 당신은 충분히 낮아져 용서할 수 있고,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 건강한 자존감으로 충만해져 회개할 수 있다. 교회와 공동체로서 관계를 잘 유지하려면 깊은 겸손과 큰 기쁨에 힘입어야만 한다.

 

팀 켈러, “용서를 배우다” pp. 285-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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