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성령, 그리고 신앙의 관계
1532년 12월 No. 402

“믿음과 성령은 함께 가지만, 성령께서 항상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성령과 함께 한다는 것을 깨닫지는 못했지만, 코르넬리우스(Cornelius)는 베드로가 그에게 오기 전에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행 10:1-48) 비록 구약의 족장들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을 지라도 그리스도와 함께 했던 것처럼, ‘우리는 성령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던 사도행전 속의 사람들 또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붙잡았고 그 말씀을 통해 성령을 받았습니다. 후에 사도행전에서 성령은 그들에게 분명히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 일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됩니다. 말씀이 먼저 오고 그 말씀과 함께 성령께서 나의 마음에 숨을 불어 넣으시기에 나는 믿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나는 내가 다른 인격이 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두 가지 요점들, 즉 성령을 소유하는 것과 당신이 그 분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군가 당신 귀에 이야기를 할 때, 그의 호흡을 [당신이 느끼기] 전에는 그의 말을 듣는 것이 어렵습니다. 호흡이란 그렇게 강력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 성령께서 말씀과 동행하시고 당신의 마음에 살아 숨을 쉬십니다.
궤변가들(sophists)은(중세의 스쿨라신학자들을 지칭할 때 루터가 주로 사용한 용어) 마치 이미지가 거울에 비치는 것처럼 이것은 인식(knowledge)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말씀이 선포되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불어오시고 또한 우리에게 내적으로 숨을 불어 넣어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에 대해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다“(요12:39) 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가 열지 못하는 비밀의 상자 안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비난 받는 누군가가 하나님께 ‘왜 하나님께서는 나를 다르게 만드셨습니까? 라고 질문하는 것을 상상하는 일은 쓸모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은 ‘왜 당신께서는 저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라고 질문을 할 생각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그들은 ‘당신은 율법을 소유했습니다. 왜 법을 지키지 않습니까? 당신은 율법을 지켜야만 합니다.’와 같은 생각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생각들이 그들을 괴롭힐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양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장 큰 선물은 말씀에 의해 평화로워진 양심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이 죽는 것을 허락하셨다는 사실이 우리가 선한 양심을 소유하는 것을 가능케 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루터전집 54권(탁상담화) pp.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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