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안중근 의사의 의거 소식을 들은 이곳 한인들이 독립운동 기금을 처음 모집한 이후 1920년까지 하와이에서만 모임 독립자금의 규모는 300만 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와이 이주 노동자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머나먼 타국에서 일하며 생계르 꾸리는 그들이 당장 고국을 위해 총이나 폭탄을 들 수는 없었어요. 정부에 들어가 일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모은 돈을 독립 자금에 보태는 것, 그건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나는 이것밖에 못 해’, ‘내가 무슨 큰 일을 하겠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런 작은 마음이 모이고 모여서 시대정신을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곧 역사가 되었고요.

대단한 역사적 사건에 이름을 남긴 사람에 비해 나의 힘과 역할은 얼핏 별 볼 일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이 작은 일이 역사의 발전 방향에 부합한다면 시대정신의 한 조각을 쥐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사실. 지나간 역사를 기억하고, 앞으로 다가올 역사에 관심을 가진다면 나의 옆 사람, 또 그 옆 사람에게 분명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사실. 하나는 작아 보이지만 그것들이 모이면 역사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된다는 사실. 이는 제가 역사를 공부할 때마다 확인하는 진실들입니다.

세상은 위인에 의해서만 좌우되지 않습니다. 하나하나의 물방울이 모여 거대한 물결을 이루듯,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건강한 시대정신이 결국 역사를 바꾸거든요. 나의 역사가 모여서 우리의 역사가 되고, 그것이 곧 인류의 역사가 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역사를 쓰는 사람은 따로 있지 않습니다. 바로 나, 그리고 우리의 행동이 곧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존재가 작아 보이더라도 나 역시 역사의 구성원이자 주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역사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나의 이야기니까요.

 

최태성, “다시 역사의 쓸모” pp.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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